[잡기장] 외할머니에 대한 회고록

사실 지난 몇달동안 글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책도 읽을 수 없었다. 문장이 문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난독증 환자처럼 그저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무의미한 글읽기만 했다.* 그래서 숫자에 더 집착했다. 숫자는 그나마 텍스트로 존재해도 읽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이었다. ![textImg](https://c1.staticflickr.com/5/4216/34447828894_e9212e1b50_b.jpg)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머니 역시 돌아가셨다. 두분의 임종은 나에게 있어서 `견디기 어려운 크나큰 아픔`이었다. 난 집안사정으로 인해 어린시절 외갓집에서 자랐다. 너무 어렸기때문에 그렇게 떨어져 산다는 것에 대해 부모에 대한 집착도 없었고 서러움도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가 뭐가 그렇게 안쓰러워 보이셨는지 어린 손주에게 항상 미안해하시고 아껴주시고 떼를 쓰던 어리광을 부리던 화 한번 내지 않으셨다. *아니, 할머니는 날 부모님처럼 부족함없이 사랑으로 키우셨다. 그래서 난 어린날의 기억들이 외로움과 허전함보다는 그리움과 아련함으로 남는다.* ![grandMom](https://c1.staticflickr.com/5/4235/34479483393_ebe3e64a6e_h.jpg) 할머니는 음식을 정말 맛깔나게 하셨다. 내가 좋아하던 할머니의 음식은 배추김치, 파김치, 고추잎, 닭발, 보신탕, 수육, 된장국 등이다. 손이 크셔서 한번 하시면 일주일은 먹어야 했다. 하지만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맛있었다. 어린시절 외갓집은 항상 먹을 것이 풍족했다. 방 한켠에는 메주가 농익고 있었고 천장에는 석류가 달려 있었다. 마당에는 고추와 깨를 말리시곤 했다. 윗집에 사는 삼촌은 어린 내 얼굴이 `메주같이 생겼다`며 항상 놀리셨다. 하지만 메주를 옆에서 바라보면서도 메주같이 생긴게 뭔지 하는 의문만 일었다. 지금은 보신탕을 잘 먹지는 못하지만 당시 내 기호식품 1위는 할머니의 보신탕이었다. 어느정도로 맛이 있었냐면 5살 때 외할아버지가 약속이 있어서 함께 간 다방에서 다방누나가 어떤 쥬스를 먹고 싶냐는 물음에 서슴없이 할머니의 보신탕을 먹고 싶다고 했던 일화도 있다. ![uncleWithMe](https://c1.staticflickr.com/5/4290/34481677603_d92e9f0d1a_k.jpg) 초등학교 5학년 어버이날 때 작은 삼촌이 우리집을 놀러오셨다. 나는 어버이날이라고 카네이션 다발을 사고 어머니께 드렸는데 어머니는 시골로 내려가는 삼촌에게 할머니에게 전해달라고 내 꽃다발을 주셨다. 치기어린 심정으로 어머니에게 드린 선물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게 싫어 울고 불고 떼를 쓰며 반대해서 결국 전해지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난 너무 어렸고 치졸했으며 어린 시절 사랑받았던 손주로서 `살아생전 꽃 한송이 챙겨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명절때마다 외갓집을 찾는 것은 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외갓집을 찾아가면 할머니는 언제나 장을 보시고 돌아와 풍족한 밥상을 차려주시며 반겨주셨다. 아침을 먹고 수박을 먹고 배를 먹고 사과를 먹고 다시 점심을 먹고 수박을 먹고 딸기를 먹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살이 빠졌다며 계속 음식을 차려주셨다. 외갓집을 다녀올 때면 내 배는 할머니의 사랑으로 빵빵해져서 든든했다. 대학시절 한 교양수업을 듣고 `'나의 일상이던 것들이 할머니에겐 낯선 것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문뜩 외갓집을 내려가면 할머니와 카페도 가고 영화도 봐야지 다짐했던 것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다음에...'라는 핑계로 끝끝내 실천하진 못했다. ![bike](https://c1.staticflickr.com/5/4203/34481790583_1a2f02c75e_b.jpg) 한창 바이크를 탈 때나 가끔 갑작스럽게 찾아뵙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소식도 없이 어떻게 왔냐?" 놀라시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내가 "할머니 보고싶어서 왔어요." 하고 대답하면 `그저 웃으시면서 "잘왔다." 말씀하시며 환하게 웃으시던 미소`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내려갔다 올라올 때면 항상 두손 가득히 찬거리를 챙겨주셨다. 가끔은 손이 무거운게 귀찮아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던 내가 밉다. 할아버지의 장례식날 할머니는 힘든 몸을 이끌고 오셨다. 할아버지의 입관까지 지켜보시고 저녁에 많이 편찮으셔서 요양원으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에 정신이 없던 나는 할머니가 침대에 누으시고 어지럽다고 말하시는 것을 들은 채 진정하실 때까지 기다렸다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할머니께 다짐을 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겨야 했다. 그로부터 약 한달 뒤 할머니가 병실에 입원을 하시고 돌아가셨다. 나도 하루는 밤을 새면서 그동안 할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과 고마움을 전달`했기에 할머니의 임종이 불편하진 않았으나 아직도 할머니를 생각할 땐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grandMom](https://c1.staticflickr.com/5/4228/34481620703_44e7f5ac6d_k.jpg) 며칠 전 어머니는 이제 아무도 없는 빈 외갓집을 다녀오셨다. 밥을 먹고 있는데 큰 삼촌이 할머니의 된장을 보내주신다고 이야기 하셨다. 나는 울컥한 마음에 밥이 더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 남겨진 할머니의 된장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식탁에 할머니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작년에 주신 잘 익은 배추김치와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오셨던 아끼시는 간장,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할머니의 된장까지... *어렸을 적 할머니는 내가 울면 그래도 밥 한숟깔이라도 먹어야 한다며 물을 말아 떠먹여 주셨던 것 마냥 눈물에 밥 한숟깔을 목구멍에 꾸역꾸역 밀어넣어야 할까?* 더이상 곁에 계시지 않지만 이젠 느낄 수 있다. ###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할머니!!